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쿠데라 야스히코 (문단 편집) === 클럽 === 1970년 [[일본 사커 리그|JSL]]의 후루카와 전기[* 현 [[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]]의 전신.]에 입단하여 1976년 JSL과 [[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|천황배]]을 우승하고 1977년 JSL컵을 우승했다. 이후 1977년 여름 독일 [[분데스리가]]의 [[1.FC 쾰른]]으로 이적하여 1977년 10월 5일 '''유럽 리그에 출전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'''가 되었다. 1977-78 시즌 전체 24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하여 쾰른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[[DFB-포칼]] 우승을 거머쥐어 '''아시아 선수 최초로 분데스리가에서 우승'''하였고, 1978-79 시즌에는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러피언 컵]]에 출전하여 4강 1차전 [[노팅엄 포레스트 FC]]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어[* 1차전은 3:3 무승부. 2차전은 0:1로 패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. 그리고 노팅엄은 이 대회 우승했다.] '''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'''을 기록했다. 1980-81 시즌을 앞두고 [[2. 분데스리가]]에 있던 [[헤르타 BSC]]로 이적했다. 이후 한 시즌 만에 분데스리가로 돌아와 [[오토 레하겔]] 감독이 이끄는 [[SV 베르더 브레멘]]으로 이적하여 3번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하고 1986년까지 활약했다. 오쿠데라의 분데스리가 통산 기록은 총 234경기 출전 26골. 1960~70년대생 이상의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선 이것보다 더 특기할 만한 건 차범근과의 피 튀기는 라이벌 관계인데, 그가 차범근이 있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나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맞붙을 시엔 한일 축구팬들이 득달같이 밀어주며 '한일 대리전'으로도 불렸다.[* 실제로 브레멘 소속 당시 프랑크푸르트, 레버쿠젠과의 경기가 있으면 오토 레하겔 감독으로부터 차범근을 집중마크 하라는 지시를 따로 받았다고 한다.[[https://www.soccer-king.jp/news/japan/japan_other/20180314/728694.html|#]]] 1986년 여름, 오쿠데라는 오랜 독일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전 소속팀인 후루카와 전기로 복귀했고,[* 복귀 후 소속팀을 1986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.] 1988년 현역에서 은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